▲ 가스계소화설비 설계프로그램의 설계심사를 위한 서류에는 전체적인 가스소화설비의 설계내역부터 각 구획된 방호구역의 구체적인 설계사항들이 기재되고 있다 © 소방방재신문 | |
지난해부터 의무화된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심사가 1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초 시행된 관련법(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방시설 중 성능인증 품목으로 분류되는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프로그램'의 제품검사(설계심사. 이하 설계심사)가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부터 지어지는 모든 소방대상물의 가스계소화설비 설계도면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의무적으로 설계심사(제품검사)를 거쳐야만 한다. 이는 소방방재청이 다른 소방용품들과는 다르게 ‘설계프로그램’에 대한 성능인증을 받아 유통되는 가스계소화설비의 제품검사를 ‘설계도면에 대한 심사’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기술자 등 소방시설 업계에서는 설계심사에 대한 타당성 논란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방시설 설계에 대한 적정성 판단은 소방관련법(소방시설공사업법)에 따라 자격을 갖춘 소방시설설계업자의 몫임에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도면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설계심사 제도 자체의 부당성과 함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지속되자 지난달 28일 소방방재청은 한국소방산업기술원과 한국소방시설협회, 한국소방기술사회, 한국소방기술인협회, 가스계소화설비 제조업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선 검토 회의를 갖는 등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1년 남짓 시행된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심사에 대해 관련인들이 지적하는 문제점과 내면을 살펴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집어봤다.
식을 줄 모르는 설계심사 타당성 논란
▲ 지난달 28일 열린 가스계소화설비 프로그램 성능인증등에 관한 검토회의에는 소방방재청 소방산업과 및 제도과, 소방산업기술원, 한국소방시설협회, 소방시설관리협회, 제조사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최영 기자 | |
가스계소화설비 설계심사에 대한 타당성 논란은 해당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다.
소방시설설계업자와 기술사 등 소방시설 설계와 직결된 관계자들은 ‘가스계소화설비’라는 특정 소방시설의 설계도면 적정성 검토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법에서 규정하는 설계 권한과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8일에는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한국소방시설협회 및 소방기술사회, 소방산업기술원, 제조업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선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소방시설협회와 한국소방기술사회 관계자들은 설계심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설계심사 제도의 전면 폐지를 거듭 요구했다. 또 설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요청했다.
설계업체에 설계도서 작성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확인검사 등을 통해 부적합한 설계와 시공, 감리가 이뤄졌을 경우엔 처벌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설계업계의 주장이다.
문제 발단은 가스소화설비 설계 부실!현행법상 모든 소방시설의 설계는 소방시설설계업을 등록한 전문업체를 통해서 이뤄져야만 한다.
하지만 소방시설 중 하나인 가스계소화설비 설계는 지금까지도 성능인증을 받은 제조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심사 논란을 불러온 주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스계소화설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적용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일부 제조사에서 영업 대상인 설계업체에 자사 시스템을 반영시키기 위해 ‘설계 제공’을 영업무기로 삼아 왔다.
제조사 간의 영업경쟁이 심화되면서 최근에는 너 나 할 것 없는 모든 제조업체들이 가스계소화설비의 개발 및 제조와 함께 영업 대상인 설계사무소에 설계를 무료로 제공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
때문에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방시설설계 업체들은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는 당연히 성능인증을 받은 제조사가 지원한다는 의식까지 팽배하다.
가스계소화설비를 제조하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설계를 해주지 않으면 시스템을 팔지 못하는데 어떻게 안해 줄 수가 있겠냐”며 “사실 설계사무소에는 설계 프로그램도 없고 전문 인력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28일 열린 회의에 참석한 한국소방시설협회의 김동일 본부장은 “가스계소화설비의 원초적인 문제는 제조업체가 설계를 하고 설계업체가 날인을 하는 현실”이라며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실체는 위법이다. 설계 실무는 제조사가 하고 설계자는 도장만 찍는다. 이것이 부실의 단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조업체 설계 실태는 업체들의 인력 구조만 보더라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스계소화설비 설계프로그램의 KFI성능인증을 받은 업체는 10개사에 이른다.
이들 업체에서는 가스계소화설비 설계를 위한 별도의 인력을 확보해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있다. 설비의 유통량이 큰 업체의 경우 전문 설계 인력이 10명이 넘는 곳도 있다.
제조업계에 따르면 제조사를 통한 설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일부 제조사는 ‘성능인증’ 사항과 다르게 제한사항을 초과하거나 입력값을 임의 변경하는 등 부실 조작 설계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 설계업체나 감리자 등은 이를 여과조차 하지 못하는 등 결과적으로 가스계소화설비의 부실이 만연하고 있다는 게 관련 제조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설계심사는 이 같은 제조업체에 의한 설계부실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설계심사는 소방시설의 설계를 전문 설계업자를 통해 이뤄지도록 한 관련법의 규정과는 달리 제조업체의 설계를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
제도적 권한 지키지 못한 설계업체 탓 크다!논란을 야기시킨 설계심사가 시행된 것은 지금까지 법에서 규정하는 설계 영역을 지켜오지 못한 설계업자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일부 설계업체들은 가스계소화설비가 적용되는 도면을 넘겨주고 하루만에 설계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설비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퇴근은 고사하고 밤새워 설계에 매달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설계업체에서는 동일 가스를 취급하는 여러 제조사에게 설계를 요구해 빨리 들어오는 도면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서 (설계업체에)넘겨줬다고 설비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라며 “만약 직접 설비를 설계한다면 여러 개를 중복해서 설계를 하겠는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에 의한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설계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제조사는 설계도서를 작성하고 이를 넘겨주면 날인을 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구조를 관련 업계에서는 마치 당연하게 여겨왔다.
설계심사 제도의 시행으로 제조업체를 통해 이뤄지는 설계가 부당하다는 주장이 법체계상 합당할 수는 있지만 그 이전에 현재의 시장 구조를 형성하는데 한 몫을 해 왔다는 점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제조업계에 따르면 제조사를 통한 부실 조작 설계를 설계업자나 감리자 등이 관리, 감독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해 경쟁 제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만큼 가스계소화설비에 설계에 대한 설계업계의 관심이 적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방방재청, 구체적 개선방안 이달 중 마련키로…가스계소화설비 설계심사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설계업체들이 책임과 권한을 요구하자 소방방재청은 조만간 개선방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관련 회의 이후에는 설계심사가 폐지될 것이라는 관련인들의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은 개선방안 수립에 신중한 분위기다.
소방방재청 소방산업과 관계자는 “회의 당일 관계자들 각자의 의견은 충분히 수렴했다”며 “소방제도과 등 관련 담당자들과 의논을 진행하고 있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은 현재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아직까지 명확한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이달 중 이에 따른 개선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소방방재청 내부에서도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방안 설정을 놓고 실무 관계자들 간의 이견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심사 비용 3억원 육박, 타당성 판단 중요!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따르면 설계심사 의무화 조치 이후 3월 8일 현재까지 총 629개소에 이르는 대상물의 설계도면이 제품검사를 받았다. 해당 접수 수수료는 2억 8천여만원 정도로 현재까지도 설계심사는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논란에 따른 소방방재청의 개선방향 설정이 시급성을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에 하나 설계심사의 폐지가 결정된다 해도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소요가 불가피해 해당 기간 동안의 무의미한 수수료 낭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스계소화설비를 갖춰야만 하는 소방대상물의 설계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약 30만원의 수수료가 소요되며 3개의 방호구역을 초과할 때마다 한 개의 구역당 약 10만원의 가산 수수료가 발생된다.
관련인들은 설계심사 폐지 여부에 대한 소방방재청의 결정에 따라 비용과 시간적 낭비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하루 빨리 명확한 방침이 설정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스계소화설비 신뢰성 확보 위한 현실적 해결방안은?
‘설계심사’ 목적은 설비 신뢰성 확보, 그렇다면 대안은…
소방기술인들과 설계업계의 주장처럼 소방시설 설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은 소방시설설계업와 기술자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계심사를 폐지하는 것이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을 보장하는데 이롭지만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는 국가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 등 검정기관을 통해 인증받은 프로그램으로 설계돼야만 한다. 이로 인해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가스계소화설비는 각 제조사를 통해 ‘가스계소화설비 설계프로그램의 성능’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으로부터 인증받고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설계가 이뤄져 건축물에 적용된다.
설계심사는 이러한 성능인증 설계프로그램을 사용해 적정하게 설계됐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제도적 의무사항이라는 명분을 가진다.
‘설계심사’가 가스계소화설비 설계를 인증받은 프로그램으로 적용했는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과정이고 이는 곧 ‘설비의 신뢰성 확보’가 목적인 셈이다.
때문에 가스계소화설비를 제조하는 일부 제조사들은 설비의 신뢰성을 사전에 확보하고 업체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설계심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도 내비치고 있다.
제조사를 통해 설계가 이뤄지는 현재의 가스계소화설비 시장 구조에서는 제조사 의도에 따라 성능인증에서 벗어난 형태로 얼마든지 부실 적용될 수 있어 설계심사와 같은 중립적 관리, 감독을 통해 부정행위를 걸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일부 제조업계의 주장처럼 가스계소화설비가 성능인증을 받은 것과 다르게 적용될 경우 설비의 경제성을 좌우하게 되면서 영업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고 결국에는 설비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제품검사(설계심사)를 받은 건수는 총 468건으로 이 중 15%에 이르는 70건이 불합격 처리됐으며 2회 이상 불합격 된 사례도 상당수다.
불합격의 주원인은 실제 도면에 적용된 설계프로그램의 데이터 입력값이 성능인증을 받은 사항과 다르거나 임의 변경한 사례였다. 또 설계 제한사항을 미준수하는 등 대부분이 제조업체에서 실시한 설계 오류가 원인으로 나타났다.
설비 신뢰성 위한 현실적 대안은?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설계심사’도 가스계소화설비의 총체적 신뢰성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도면의 적정성을 사전에 판단 받았더라도 시공과정에서 현장과 도면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사전에 설계도면을 검사하는 개념으로 적정성을 판단했다 하더라도 현장 적용에서 오류가 생길 경우 설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 향상을 위한 방안 중 하나인 설계심사는 모든 것을 담보할 수 있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스계소화설비의 신뢰성 확보는 1차적인 설계도면의 적정성 뿐 아니라 해당 도면과 건축물에 적용된 실제 설비와의 일치성이 관건이다.
때문에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 신뢰성을 위한 사전 검사 개념의 ‘설계심사’ 보다는 사후 검사 개념으로 완공된 건축물의 주기적인 감독이 가능토록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스계소화설비에 대한 철저한 사후관리 체제를 마련하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에는 해당 사안에 따라 설계자, 감리자, 제조업체 등에게 막중한 책임을 묻는 등 강경한 조치가 이뤄져야만 한다.
이는 소방방재청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소방특별조사’나 ‘소방용품 수집검사’, ‘소방공사현장 표본점검’ 등을 통해 가스계소화설비의 적용 건축물을 확인 점검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이 점검 과정에서 성능인증 프로그램의 사용여부는 물론 설계의 적정성, 그리고 설계도면과 현장의 일치성 등을 확인하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관련자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방시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건축물에 적용된 가스계소화설비의 점검을 관 주도로 한 적은 없었다”며 “일부 소방관서에서 (완공검사 때)현장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정례적으로 건축물을 샘플링해 설계도면과 현장, 프로그램 등을 확인하면 누가 잘못된 설비를 적용할 수 있겠냐”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02년 최초 도입된 가스계소화설비 설계프로그램 사용 의무화 조치 이후 완공된 건축물을 대상으로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 상태를 점검하거나 도면과 설치 실태를 대조하는 등의 세부적인 조사는 전무했다.
다만 2005년 소방방재청 차원에서 전국적인 가스계소화설비 실태조사를 벌여 상당수 현장에서 문제점을 도출했으나 심각한 논란이 예상돼 실태조사 보고서 자체를 사장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 발단인 제조업체 의한 설계 구조, 해결책은?현행법에 따라 소방시설은 소방시설설계업을 등록한 자만이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가스계소화설비라는 특정 영역에서 만큼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제조업체를 통해 설계가 이뤄진다는 현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관련 분야에서는 “제조업체는 설계지원을 하는 것이기에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견부터 “엄연히 따지면 불법이다”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정책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현행법과 같이 설계업자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확고히 조성하거나 전문 제조업체의 설계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도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법적 설계자 통한 설계, 정착 위해선 = 소방시설 중 하나인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를 현행 제도에 맞게 설계업자를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능인증 설계매뉴얼’의 공개와 ‘설계프로그램’의 보급이 절실하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성능인증’이 이뤄지는 가스계소화설비는 소화성능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적정성, 매뉴얼 등 총체적인 부분이 검토된다.
이 중 설계를 위한 필수적 가이드라인인 ‘설계매뉴얼’에는 프로그램에서 걸러주지 못하는 설계 제한사항이 텍스트로 나열되는데 관련 제조업체 대부분은 이러한 ‘설계매뉴얼’을 시중에 전면 공개하지 않고 일부만을 발췌해 공급하고 있다.
설계매뉴얼에 적시된 제한사항은 제조사들간의 영업상 장단점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술적 노하우를 통해 얻어낸 값이기에 기술보안 등을 이유로 전면 공개를 꺼려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방시설설계 업체에서 가스계소화설비를 설계하려고 해도 이 매뉴얼 없이는 부실설계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성능인증을 부여한 한국소방산업기술원도 각 제조사의 노력과 기술개발을 통해 받은 성능인증 정보를 제조사 동의없이 완전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작 현행법에서는 설계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설계업체에서 부여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위한 기반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셈이다.
한 설계업계 관계자는 “설계매뉴얼에는 설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제한사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정보가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설계를 하라는 것이냐”며 “숟가락도 주지 않고 국을 먹으라면 어떻게 먹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처럼 부실설계를 방지하고 설계업자를 통한 적정 설계가 실시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성능인증시 검증된 원본 ‘설계매뉴얼’의 공개와 배포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또 각 제조사들이 성능인증을 받은 ‘설계프로그램’의 보급도 필요하다. 설계프로그램은 성능인증 당시 프로그램과의 동일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유통되는 각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사전에 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검증받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검증된 설계프로그램을 유상 또는 무상 등 제조사 의사에 따라 공급되도록 하되 현재 설계심사로 보고 있는 ‘사전제품 검사’의 개념을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28일 열린 회의에서 소방제도과의 최재민 화재안전기준 담당 계장은 “제품검사의 개념은 원래 설계프로그램에 대한 CD에서 국한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제조업체 설계 권한과 책임 부여하는 방안도 = 일각에서는 소방시설 중에서도 특수 시설에 속하는 가스계소화설비 등에 한해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제조업체에게도 설계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방안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제조업체가 설계한 도면에 설계업체 및 기술자는 날인만 해 오는 현실은 변함이 없지만 최근들어 설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설계업체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유는 설계에 대한 책임은 제도상 전적으로 설계업자에게 있음에도 특정시설에 대해 소방산업기술원이 중간에서 설계도면을 감독한다는 것 자체가 타당성이 없다는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관련 가스계소화설비 제조업계 사이에서 나타나는 업체 간의 불신은 부정적인 설계가 만연될 수 있다는 우려로 표출되고 있어 부정 설계를 저지르는 업체에 대한 제재방안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특히 제조업체를 통해 설계된 도면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법적 설계 책임 의무에 따라 도면에 날인을 한 설계업자만 처발받는 것이 현재의 법이다.
때문에 제조업체가 설계를 부정적으로 실시했다 해도 향후 문제가 발생되면 설계업자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현재의 법적 구조에서는 제조업체의 편법 설계를 원천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를 통해 이뤄지는 가스계소화설비의 설계 현실을 반영해 제조업체가 설계도면에 날인토록 하고 부적정한 설계가 이뤄진 사실이 적발되면 가차없이 ‘성능인증’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각에서는 성능인증 제조업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의 동시 부여를 통해 현재 제조업계 사이에서 나타나는 부실 조작 설계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