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조사관 이야기] “진정 전기적 요인인가? 담배꽁초인가? 잔류한 증거만으론…”여치 소리가 잔잔해지며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슬슬 퍼진다. 귀뚜라미는 가을을 느끼고 즐기면서 겨울이 오지 않길 바라는 듯하다. 겨울이 오면 낭만을 노래하는 사람도 있고 한파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하는데 자연환경은 누구에게나 같은 환경을 제공하지만 느끼는 이에 따라 공평과 불공평이 공존할 수 있다.
여름의 무더움을 생각하며 눈 내리는 겨울을 동경하고 희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울 한파에 난방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태양이 비추면 그늘이 생기듯 양면이 같을 수 없다. 음과 양이 있듯이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뚜렷이 갈린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과학으로 증명하고 관습으로 굳혀진 우리들의 진실이 아닐까 싶다. 또 화재 현장에서 발굴하고 수집한 증거물이 말하는 화재 원인이다.
화재 현장에서 증거보다 더 확실한 원인은 없다. 그러나 화재 원인으로 규명된다 해도 그 원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잔류하는 물질의 물성에 따라 다르므로 증거와 현장 가연물 적치 상태, 공기의 유입경로 등을 고루 판단한 후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화재 현장에 잔류하는 비철금속 중에는 전선이 많다. 정작 단락이 원인이라면 화재 대상물 내부의 화재 하중이 몇 ℃ 정도였는지, 가연물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화재 하중이 1천℃ 미만이었다면 단락이 화재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천℃ 이상으로 상회했다면 단락 흔적도 용융으로 변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전선에 용융점이 있다고 해서 섣불리 전기적 요인을 단정하면 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전선 용융 흔적에 광택이 있고 표면이 매끄러우며 반구형 형태로 발견된다면 대부분 현장에서 단락으로 판단한다”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있다면 단락인가? 광택이 없다면 용융인가? 그렇지 않다. 화재 현장에 잔류한 전선의 흔적에서 윤기와 표면만으로 단락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 있는 광택이 보인다면 단락 흔적으로 믿고 싶은 게 화재조사관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전선에서 발견된 용융 흔적이 정작 전기적 에너지에 의한 건지, 통전은 됐는지, 차단기 상태는 어떤지, 단락 흔적이 맞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통전됐으나 스위치는 OFF 상태였다면 회로 구성을 살펴야 하고 전선의 종류에 따라 단선(單線)인지, 연선(沿線)인지 확인해야 한다.
또 한 선에서 단락이 발생했는지, 두 선 모두 용융 흔적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즉 공극(Void)에서 오는 단락인지, 직렬 아크(Serial arc)인지, 병렬 아크(Parallel arc)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녹록지 않다.
어느 날 비닐 천막 화재 콘크리트 위에 비닐 천막을 축조해 사용한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비닐 천막 내부에는 화기 취급 시설이나 연소기구는 없었다.
단순히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내부 전기시설이 설치돼 있었으나 전등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진술은 진술일 뿐이다. 현장에 설치된 전선이나 전기시설을 확인해야 한다. 차단기나 분전반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주차장 한쪽 구석에 철 파이프로 비닐 천막을 축조해 공구와 잡동사니를 적치한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엔 철골 파이프만 잔류해 있었고 비닐이나 가연성 물질은 모두 소실된 상태였다. 바로 옆 컨테이너는 외부에서 수열받은 형태로 식별됐다. 비닐 천막 뒤 건물 외벽 타일이 박리된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전소하면 화재 현장에 증거가 남기 쉽지 않다. 잔류한 형태를 살펴보면 철재가 대부분이고 일부 비철금속도 확인된다. 종이가 차곡차곡 쌓인 부분은 소염 구간이 형성되면서 미연소 상태로 잔류한 부분이 관찰됐다. 이렇게 전소하면 현장에 잔류한 증거는 비철금속의 용융점이 식별된다.
이런 부분은 연소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으나 가연물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인데도 정확하게 알고 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듯 하곤 한다. 만약 이권 관계가 있다면 더욱 말수를 아끼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사용자는 이 비닐 천막 내부에서 전등 외엔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현장에서 분전반이 확인됐다. 발굴된 3구 콘센트에 2개의 플러그를 사용한 흔적과 함께 더 발굴해 보니 전기용접기를 전기에 연결된 상태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현장에서 분전반이 발굴됐다. 메인 차단기고 50A로 확인됐다. ELB는 서너 개 연결해 사용한 것으로 볼 때 단순하게 전등만 사용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탄화 정도가 심해 일부 차단기는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는가 하면 일부는 분전반에서 이탈된 상태로 발굴됐다.
이런 현상은 화재 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화재 현장에서 사용자에게 질문하니 사용하지 않을 땐 차단기를 내리고 화재 당일도 차단기를 내렸다고 했다.
외관상 소훼 상태가 심해 확인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탄화한 차단기 탄화물을 하나하나 걷어내면서 내부에 철재로 된 걸림쇠의 ON, OFF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분전반을 확인하니 ELB가 6개 정도 설치돼 있었고 메인 차단기는 별도로 설치된 형태다. ELB는 소훼 상태가 심해 일부는 확인이 어려웠고 일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메인 차단기의 ON, OFF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전선 피복은 손상되기 쉽고 흔적을 남기기에 차단기 확인이 필요했다. 대부분 현장에서 부하의 단락 흔적이나 용융 흔적이 발생한 부분부터 전원 측으로 확인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현장에서는 메인 차단기부터 부하 측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택했다. 단순하게 비닐 천막에 사용할 전선을 건물에서 연결했고 건물에 연결된 전선에 분전반을 설치해 사용했다. 현장이 좁고 입력 전선이 어떤 부하로 연결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분전반부터 부하 측으로 확인했다. 우선 메인 차단기를 살폈다.
차단기 걸림쇠를 확인하니 중간에 반달 모양 홈이 있었다. 이는 Trip을 의미한다. 통전과 차단기 2차 측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차단기에 연결된 전선에서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란 걸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게 전기적 원인이 선행됐는지, 화염에 의해 전선 피복이 손상됐는진 확인이 불가하다.
어느 감정기관에서는 감정서에 “전선 피복이 화염에 의해 손상되고 형성된 단락 흔적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그건 현대 감정 기술로 화염이 선행됐는지, 단락이 선행돼 화재가 발생했는진 확인이 어렵다.
전선에서 단락으로 화재가 발생해 피복이 손상됐는지, 화염에 의해 피복이 손상되고 단락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금속 현미경을 통한 조직 분석을 할 때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에너지 분산형 분광분석법(EDS, Energy Dispersive Spectroscope)으로 분석해도 논단할 수 없고 주사현미경(SEM, Scanning Electron Microscope)을 이용해 분석할 때도 화염과 단락 선행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에너지 분산형 분광분석 방법으로 주변 산소가 21% 이상 충분할 때와 19% 이하일 때 분석에서 수치가 달리 나타날 순 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단정해 선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게 필자 견해다.
차단기 Trip이 확인됐으니 부하 측 전선을 따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단부에 콘센트가 연결돼 플러그 2개가 꽂혀 있었다. 뭘 사용했는진 확인되지 않지만 부하에 2개 있다는 건 확인됐다.
콘센트는 한쪽만 잔류했고 한쪽은 소락했다. 한쪽의 플러그 받기를 살펴보면 콘센트는 3구였고 3구 중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플러그가 꽂힌 형태였다.
이런 경우 다른 한쪽의 플러그 받기를 발굴할 수 있다면 최대한 현장을 확인하고 발굴해 전기적 스트레스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발굴된 형태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나 소락된 부분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러그 받기 두 개를 모두 찾았으나 전기적 스트레스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기기기를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되나 부하에 어떤 기기가 연결됐는진 알 수 없었다. 하나의 플러그는 바닥으로 연결된 멀티콘센트로 확인됐다. 하나는 전선이 끊어져 확인이 어려웠다.
멀티콘센트 플러그 받기에서 용융점이 확인된다. 멀티콘센트에 꽂혀 있던 플러그 하나는 전기 용접기였다. 다른 무언가 꽂혀 있었던 것인데 어떤 기기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플러그 받기에 전기적 스트레스로 식별되는 용융점이 있었다.
멀티콘센트에 꽂혀 있던 전기용접기 전원선이다. 왼쪽은 용융돼 있었는데 사실 전기적 원인인지, 화염에 의한 건지의 판단은 어려웠다. 다만 오른쪽 용융점은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경계부와 용융부도 확인되고 변색 흔적이 짧아 단락 흔적으로 결론지었다.
멀티콘센트에 용융 흔적이 관찰되고 꽂혀 있던 전기용접기 전원선에서 단락 흔적이 확인된 건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단락 흔적이 하나일 때는 쉽게 단정할 수 있겠지만 단락 흔적으로 판단되는 부분이 다수일 때 어떤 단락 흔적이 선행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현장엔 멀티콘센트와 전기용접기, 공기 압축기(Air compressor)로 연결되는 전선이 있었고 세 전선 모두 용융 흔적이 관찰됐다. 이런 경우 어떤 게 선행됐을까? 알 수 없다. 교과서대로 한다면 부하 측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만 콘센트에 꽂힌 채로 단락 흔적이 식별됐다면 선행 여부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공기 압축기 전원선 끝부분으로 단락이 식별되는 건 공기 압축기 전원선에서 최초로 단락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단락이 발생한 위치가 비슷하고 공기 압축기와 전기용접기 전원선에서 발견된 단락 흔적 중 어느 기기 전원선에서 단락이 선행됐는지 판단하긴 어렵다.
그냥 단순하게 전원 측에서 멀리 있고 전원선 길이가 긴 형태의 끝단에서 발견된 단락 흔적이 선행됐다고 하면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화재조사관 교육 교재에서 ‘부하 측에서 전원 측으로 입증’이라고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현장의 특이한 점은 단락 흔적이 한 지점에서 발굴됐고 전선이 잘려있어 미확인 단락1)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전기적 요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있을까? 인근 주택이나 주차장을 이용하는 고객이 흡연 후 투척한 담배꽁초에 의한 화재도 의심할 수 있었다. [사진 1]을 보면 측면 주택의 창문이 개방된 상태라 거주자 등이 흡연 후 담배꽁초를 투척했다면 비닐 천막이 용융ㆍ소락해 하단에서 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본다.
그러나 추측만으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엔 살짝 부담스러웠다. 현장에 담배꽁초라도 있어야 가능성을 논할 텐데 전소돼 비닐 천막 내부에선 확인이 불가했다. 비닐 천막 밖은 주차장이라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관찰되긴 했다. 단순하면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하는 현장이었다.
적색 선 부분이 마트에서 전봇대를 통해 비닐 천막으로 연결되는 전원선이다. 마트에서 전봇대로 전봇대에서 비닐 천막으로 연결된 형태였다.
비닐 천막 간이창고로 판매 물품 일부와 잡동사니를 보관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에 잔류물로 확인되는 건 판매되는 물품뿐 아니라 공기 압축기와 전동공구, 전기용접기 등 다수의 공구도 보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폐쇄회로에는 컨테이너 측면에서 연기와 불꽃이 분출되는 게 촬영됐다는 전언이 있었다. 그 부분 바닥의 플라스틱 팔레트(plastic pallet)는 가장 많이 용융된 상태로 잔류해 있었다. 폐쇄회로로 비닐 천막 주변을 확인하니 화재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약 2시간 30여 분 동안 인명 출입이 없었다.
내부에 화인이 될 만한 열원이나 화기 취급시설이 식별되지 않는 점, 공기 압축기에 연결된 전기선과 전기용접기에 연결된 전원선에서 단락이 발생한 점, 연결 상태가 확인되지 않은 멀티콘센트의 용융점이 있었던 점, 당시 외기 온도가 34.8℃로 비닐 천막 내부 온도가 상승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전선 피복이 받는 외부 열은 평소보다 상승해 전선 피복의 연화(Softening) 현상 등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기 압축기는 상시 동작하는 상태로 연결돼 있어 진동이 발생하면서 전기적 이상이 생겼을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현장에 잔류된 형상, 즉 차단기 트립, 전선의 단락, 콘센트 플러그 받기 용융 등을 고려할 때 전기적 요인에 의해 착ㆍ발화된 화재로 추정했으나… 담배꽁초로 인한 발화 가능성이 계속 뇌리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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