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2023년 2월 6일 오전 10시가 넘어 튀르키예에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뉴스를 보면서 중앙119구조본부 국제구조대가 출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내 젊은 날의 기억을 소환했다. 튀르키예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건 ‘해외파병’이었다.
2006년 7월 이라크평화재건사단(자이툰)1) 5진 헌병대(현 군사경찰대)로 파병됐다. 임무는 주한이라크대사 경호였다. 경기도에 있는 특전사 특수전교육단(현 특수전학교)에서 1개월간 파병 교육을 받았다. 파병 교육은 이라크 문화와 사격술, 전술훈련, 체력단련 등으로 강도 높게 이뤄졌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 마주하는 건 서남아시아 지도였다. 파병지인 이라크는 물론 이라크와 인접 국가까지 외우고 국경을 그렸다.
이라크 북부와 국경을 마주한 튀르키예, 남쪽의 쿠웨이트, 동쪽의 이란, 서쪽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모든 걸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렇게 한 달간의 교육을 마치고 8월 이라크로 파병됐다.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를 이용해 약 16시간 비행 후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우리의 아버지와 삼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왔던 중동이다.
비행기 출입구가 열리는 순간 모두 ‘헉’ 소리를 냈다.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한 더위였다. 공기 자체가 달랐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와 촉촉한 코안 점막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고통을 줬다.
버프를 올려 코를 막았다. 여객터미널도 없는 황무지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수송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짧았지만 8월의 뜨거운 중동 날씨를 맛봤다. 곧 도착한 대한민국 공군의 C-130H 수송기를 타고 이라크 아르빌로 향했다.
공군 수송기는 1진과 함께 전개해 쿠웨이트와 이라크를 오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전쟁지역이었다. 아르빌에 도착하기까지 공군 수송기는 적의 직사화기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전술 비행을 했다.
한 마디로 곡예비행이었다. 정신없이 하늘을 오르내리며 혼을 빼놨다. “멀미할 수 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몸소 체험했다.
수송기는 정신없는 사이 안전하게 아리빌 공항에 착륙했다. 쿠웨이트보다 기온은 낮았다. 공항에서 4진 헌병대와 특전사 대원들의 호송을 받으며 자이툰 사단 주둔지로 이동했다.
오랜 시간 사막의 모래바람이 만든 언덕 아래에 부대가 편성돼 있었다. 헌병대는 사단사령부 앞쪽으로 작은 언덕 아래 컨테이너 7동이 전부였다.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중동 사람을 만났다. 현지 통역인으로 이름은 베자르였다.
첫인사에서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선조들이 한국을 돕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참전국 중 이라크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설명을 부탁했다. 자신의 선조가 쿠르드족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튀르키예에서 용맹하기로 소문난 쿠르드족 병사를 선발해 한국전쟁에 참전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이라크 북부지역과 국경을 두고 있는 튀르키예, 그리고 주변 국가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겼다.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멀다. 직선거리 약 7만8069㎞, 항공편 거리는 대략 1만㎞ 정도 된다. 아시아 지도를 보면 튀르키예는 서쪽 끝 유럽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은 동쪽 끝자락에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민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마도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돌궐을 기억할 거다. 이 민족을 투르크족이라고 부른다. 돌궐은 몽골계 유목민으로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족이었다.
돌궐이 동아시아에서 성장하고 있을 때 우린 고구려 시대였다. 고구려와 돌궐의 연합으로 당나라와 싸웠던 기록도 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 공주와 혼인했다. 즉 강력한 동맹관계였다. 이후 돌궐인들이 여러 곳으로 이주하면서 가장 크게 건설한 국가가 바로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국민은 돌궐을 조상이라고 생각하며 돌궐제국2)에 대해 학교 과정별 역사 시간에도 심도 있게 다룬다. 가지안테프3)(해외 긴급구호대가 처음 입국한 공항 지역) 시내에는 돌궐제국 당시 빌케 카간을 칭송하는 오르혼 비석에 ‘투르크와 고구려는 형제’라고 쓰여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남한을 무력적화통일하기 위해 소련제 전차를 앞세워 38선을 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즉시 UN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튀르키예는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하고 9월 25일 이스켄데룬(해외 긴급구호대가 첫 번째 도움을 주기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 10개 여단 2만1212명의 병사를 수송함에 태워 10월 18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 후 군우리 전투와 금양장리 전투, 퇴계원 전투, 네바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한국전쟁 전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안타깝게도 참전자 중 사망자 724, 실종자 166, 부상자 1599명이 발생했다.
휴전 후 3만5324명을 파병해 전쟁으로 파괴된 대한민국 재건에도 도움을 줬다. 우리 정부는 1973년 튀르키예 건국 50주년을 기념해 수도 앙카라에 6.25전쟁(한국전쟁)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튀르키예와 다시 한번 뜨거운 피의 형제임을 젊은 세대가 알게 된 건 2002년 월드컵 3, 4위전이 아니었을까? 관중석 아래위로 태극기와 튀르키예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승부를 떠나 멀리 떠났던 형제가 다시 찾아와 축제를 한 분위기였다.
당시 BBC방송에서는 “대한민국이 보여준 우정어린 사랑은 최고의 선물이었다”며 튀르키예를 부러워했다. FIFA에서는 이 경기를 역사상 가장 멋진 페어플레이 게임 1위에 올리기도 했다.
1) 2004년 2월 23일부터 2008년 12월 20일까지 이라크에 파병돼 평화유지와 재건을 위해 활동한 대한민국 육군의 민사 부대다. 자이툰은 아랍어로 올리브를 뜻하며 평화를 상징한다. 2) 552~745년까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북부 스텝 지대(지금의 몽골,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활동한 튀르크계 민족과 그들이 세운 제국 3) 튀르키예의 남동부에 위치한 6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 203만 명, 면적은 7642㎢로 바다를 끼고 있어 해상무역의 요충지다.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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