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상식] “극단적 선택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구급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한 소방공무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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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인의 근무 이력 등 | |
1992년 | 소방공무원 임용 |
2001년 | 지방소방교 승진(구급 업무 시작) |
2007년 | 지방소방장 승진 |
2010년 | 정신과 진료ㆍ공황장애 등 진단 |
2014년 | 지방소방위 승진 |
2014년 8월 | 화재진압팀 배정 (구급 업무 배제) |
2015년 2월 | 구급 업무 복귀 |
2015년 4월 | 사망 |
법원의 판단
재판부는 여러 사실을 종합해 봤을 때 “망인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사건 부지급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정신질환이 구급 업무를 하면서 발병ㆍ악화한 것임에도 망인이 구급 업무에서 멀어지지 못했던 점에 주목했다. 특히 망인이 구급 업무에서 벗어난 지 6개월 만에 다시 구급 업무로 복귀하게 되면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고 봤다.
당시 망인은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급 업무로 복귀하게 되었던바 이는 앞으로도 계속 구급 업무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걸 뜻하는 거라서 망인으로서는 구급 업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이 겪은 경제적 어려움이 망인의 극단적 선택에 일부 개입했을 순 있어도 이는 부수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 또한 정신질환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부정적인 감정과 절망감, 무력감 등에 빠지기 쉽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큰 문제가 아닌 것도 당사자에게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의 특성을 고려하면 망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역시 구급 업무로 인해 발현된 정신질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결어
극단적 선택을 한 근로자의 유족을 대리한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는 ①망인이 맡은 업무의 내용 또는 환경 등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할만한 것인 점, ②망인이 실제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 중 ②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망인의 생전 정신과 진료기록 또는 주변 동료의 진술 등을 제시한다.
그런데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게 두려워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다가 질환이 악화돼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사례는 신체와 정신의 건강 상태가 업무평가 등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소방공무원에도 자주 발견되곤 하는데 당연히 소송에서 입증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방청 차원에서 전국 소방서를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과 진료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소방공무원들이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자신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고 생각된다면 시급히 진료를 받는 게 어느 모로 보든 좋은 선택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도, 질환이 악화된 경우 각종 급여를 신청하기 위한 입증자료를 구비하는 데에도 좋은 선택이다. 최악의 경우 소송을 하게 되더라도 병원 진료기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천지 차이다.
무엇보다도 소방공무원의 건강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 소방공무원이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 등에 쉽게 접근해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빠르게 회복돼야 국민 안전도 담보될 수 있다. 소방공무원의 정신 건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세심한 관리가 행해져야만 하는 이유다.
한주현 변호사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근무하며(2018-2020) 재난ㆍ안전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변호사 한주현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보험이나 손해배상 등의 민사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청원_ 한주현 : attorney.jhhan@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